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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가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큰형은 축구를 그만두고 직업 군인으로 부사관을 선택했고, 둘째 형은 공부를 잘해 Y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입대했다.
막내 새미는 여전히 춤과 노래에 빠져 지냈다.파워볼사이트
엄마는 작년까지 하던 생선 판매를 그만두고, 안면이 있던 함바집 아줌마를 통해 건설 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그로 인해 내 몸을 감싸던 생선 냄새도 완전히 사라졌다.
고3이라 공부를 열심히 했다.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와서 서너 시간 자고 등교했다.
삼당사락(三當四落)이 유행하던 시기. 하루 세 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에 합격하고, 네 시간 이상 자면 떨어진다. 후지모도 겐고의 『3시간 수면법』이 잘 팔리던 때였다.
부족한 잠은 등하굣길 버스와 쉬는 시간에 가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여느 때처럼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학력고사도 얼마 남지 않았고, 내신이 2등급이라 점수를 더 많이 받아야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는 둘째 형처럼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받으면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깜깜한 어둠에서 형광등 빛으로 책을 보니 눈이 침침했다. 바람 쐴 생각으로 옥상에 올라갔다. 평상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음료수가 훅 들어왔다.
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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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아.”
“공부 잘 돼?” “열심히 하고 있어.” “넌 머리가 좋으니까 잘 할 거야.” “2등급이야. 너처럼 1등급은 아니야.” 수연이는 여고에 다녔는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가끔 마주치면 이런저런 얘기를 할 정도로 친분은 있었다.
“시험 잘 보면 되지. 과는 정했어?” “경영학과로 했어. 대기업 가려고.” “그래? 양복 입은 모습이 잘 어울릴 것 같다.” “너는?”
“나는 아나운서가 꿈이야. 신문방송학과로 정했어.” 잘 어울리는 옷을 선택한 것 같았다. 얼굴 예쁘고, 발음도 정확하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니까.
“어울린다.” “참, 재구는 장사하더라.” “장사? 어디서?” “아빠랑 과일 사러 영등포 청과물 시장에 갔다가 봤어. 상호가 ‘재구 상회’야. 가게도 크더라고.” 재구는 상고에 갔다. 어릴 때부터 장사에 특화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에는 그 길로 갔다. 하지만 지금 졸업도 안 했는데 자기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한다는 게 의아했다.
“재구가 운영하는 거야?” “응. 며칠 전에 엄마가 가게를 내줬대.” “졸업도 하기 전인데?” “장사로 길을 잡았나 봐. 손님 많더라. 걔는 원래 이것저것 파는 거 잘했잖아.” “그랬지.”
수연이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파워볼게임
“너는 떨어지면 재수할 거니?” “재수는 안 해.” “너도 같은 생각이구나. 나도 노량진이 싫어. 재수생, 삼수생 다 모여서 한 반에 200명이 넘게 수업을 듣는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 “너는 원하는 대학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올해는 100만 명이 넘게 응시한대. 내년은 더 심할 거야. 그래서 K대학교를 선택하려고 해.” “왜?”
의외였다. 수연이는 충분히 국내 최고의 대학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수가 싫다니까.” 수연이는 입술을 샐쭉 내밀다 말머리를 돌렸다.
“너는 언제 집에 가니?” “2시쯤에 가.” “열심히 하는구나. 피곤하겠다.” “괜찮아. 체력은 타고났어.” “나는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열심히 해.” 수연이가 내려가고, 혼자 남았다.
재구 소식을 들으니 시골 친구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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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인 영태는 잘 살고 있을까? 촉새 능주는? 나보다 네 살 많았던 양춘이는 어른이 됐을까?
왈가닥 미애는, 목련나무 집 손녀 소라는?
지난 시간이 생각나 피식 웃다가 다시 책상에 앉았다. 수학 문제를 푸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나왔다.
집에 오자 엄마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EOS파워볼
“오늘 늦게 왔네.” “수학 문제를 푸느라 좀 늦었어.” “빨리 자.” “응. 엄마도 수고해.” 엄마는 시장을 보고 식당에 갈 것이다. 고단한 당신의 삶을 위로하는 건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라 나는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 큰형은 안정을 찾았고, 둘째 형은 제대 후 졸업하고 취직하면 숨통이 트이고, 나까지 취업하면 엄마의 고생은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의 목표는 하나였다. K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하는 것.
피곤이 밀려와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 수험 번호 325번 김율무 학생, 합격을 축하합니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로투스바카라 들리는 음성에 소리를 질렀다.
    “엄마! 나 합격했어!”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우리 막내아들, 내가 해낼 줄 알았어!” “엄마, 앞으로 내가 효도할게.” “그래. 우리 아들 덕 좀 보자.” 엄마는 종일 콧노래를 불렀다. 주위에 전화로 자랑하며 마치 당신이 합격한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큰형도 축하 전화를 했고, 새미는 명문대에 들어갔다며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오빠는 대단해. 새벽에 그렇게 일하고도 명문대에 가고. 둘째 오빠는 공부만 해서 갔잖아.” “나는 아슬아슬하게 들어갔어.” 사실 떨어질 줄 알았다. 경쟁률도 높았고, 내신 2등급을 극복할 만큼 시험을 잘 본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커트라인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너는 공부 안 하니?” “공부는 중간만 하면 돼. 돌대가리 소리만 듣지 않을 정도로 하고, 노래에 집중해야지.” 열두 살의 새미는 종일 노래와 춤에 빠졌다. 작년에 이층집으로 이사 오면서 형편이 나아졌다고 판단했는지 엄마에게 춤 학원에 보내 달라고 떼를 썼다. 경제적으로 전보다 나아진 건 사실이었지만 함바집도 빚을 내서 운영하고 있어 살림은 빠듯했다.
    엄마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보내 준다고 약속했다.
    “오빠, 대기업에 들어가면 나 용돈 많이 줘. 옷도 사고, 화장품도 사야 해.” “알았어.”
    “내가 가수로 성공해서 꼭 보답할게.”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예상대로라면 나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었고, 결과는 기대를 배신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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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어제 오전부터 내린 눈이 하루를 지나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라이팬에 달걀을 두를 때 새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저기 엄마가 일하는 곳 아니야?” TV에서는 건설 현장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새벽 시간에 붕괴가 일어났으며 식사를 준비하던 두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
무너진 건물 잔해와 도로가 화면에 나오자 나는 충격에 빠졌다. 엄마가 일하던 곳이 분명했다.
“새미야, 밥 먹고 있어. 오빠가 갔다 올게.” “오빠, 엄마가 일하는 곳 맞아?” “아닐 거야. 확인하고 올게.” “응.”
새미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머리는 백지 상태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지하 주차장 자리에 합판으로 가림막을 만들어서 식당을 운영했었기에 건물이 무너졌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래도 두 명이 살았다고 하니 엄마가 포함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엄마는 괜찮을까?오픈홀덤
택시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자 무너진 건물 앞에 폴리스 라인이 길게 쳐 있었다. 기자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물을 어떻게 지었길래 눈이 쌓였다고 무너지나! 미친놈들, 철근비 아끼려고 조금만 쓴 게 분명해.” “맞아. 건설사들 다 조사해야 해. 이렇게 사람이 죽는다는 게 말이 돼!” 두 남자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우리 엄마가 여기서 함바집을 해요. 들어가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모두 병원으로 옮겼으니까 가서 확인해요.” 나는 경찰에게 들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면회가 되지 않았다. 나는 담당 의사를 수소문해 물었다.
“이여령이 우리 엄마입니다.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려 주세요.”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죽을 수도 있나요?” “기다려 보세요. 아직은 위급한 상황입니다.” 나는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거렸다.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엄마가 죽는다는 걸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제 대학에 입학하고, 엄마에게 효도할 날이 머지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저녁에 큰형이 왔다. 의사를 만나고 온 큰형은 내 등을 두드렸다.
“의사 선생님이 고비는 넘겼대. 미안하다.” “뭘?”
“네가 고생이 많아.”세이프게임 “내가 무슨 고생을 해. 그런데 형, 어떻게 나왔어?” “며칠 휴가받았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너는 집에 가서 새미 돌봐야지. 집에 혼자 있잖아.” “응.”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큰형이 와서 다행이지만 엄마를 버리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혼자 집에 있는 새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고민이었다. 엄마가 저렇게 다쳤는데 내가 한가롭게 캠퍼스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둘째 형과 새미를 생각하면 내가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형……. 나, 대학 나중에 가면 안 될까?” “무슨 소리야?” “엄마도 다치고…….” 내 말을 자른 큰형의 목소리가 커졌다.
“인마! 어렵게 간 대학을 왜 포기해? 돈이 걱정이야? 형이 다 알아서 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네 등록금은 이미 다 준비했어.” “형, 학교는 나중에 언제든지 갈 수 있어. 지금은…….” “율무야.”
큰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큰 소리로 호통을 치다가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에 이슬이 비쳤다.
“형이 미안하다. 네가 얼마나 노력하면서 살았는지 알아. 큰형으로서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그런데 네가 대학까지 포기한다면 형이 가슴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아. 우선 학교 다니면서 생각하자. 형이 최선을 다할게.” 큰형이 울었다. 그렇게 강했던 사람이 내 앞에서 무너졌다.


엄마는 보름 후 퇴원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뼈가 여러 군데 부러져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형 건설사는 도급 업체에 책임을 미뤘고, 도급 업체 사장은 도망쳐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원청은 책임지지 않았고, 법 또한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엄마는 창밖을 보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 미수금도 받지 못해서 함바집을 하기 위해 빌렸던 돈만 부채로 남았다.
“엄마, 걱정하지 마. 아들이 셋이나 있잖아. 우리가 해결할게.” “엄마는 괜찮아. 너는 흔들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한숨의 의미를 알았기에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증이 없는 상황에서는 과외를 구할 수 없어 재구에게 일자리를 부탁할 요량이었다.
수연이가 말한 문래동에서 당산동으로 빠지는 도로로 가자 ‘재구 상회’라는 간판이 크게 보였다. 생각보다 큰 가게에 놀랐다. 재구는 앞에서 딸기를 진열하고 있었다.
“재구야!” 세이프파워볼
나의 부름에 재구는 등을 돌리며 화사하게 웃었다. 여름에 햇빛을 많이 봤나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율무야,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수연이에게 들었어. 벌써 어엿한 사장이구나.” “대학은 들어갔어?” “응. K대 경영학과 들어갔어.” “역시 너는 대단해.” 재구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냉장고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줬다.
“돈 많이 벌었구나. 보온도 되는 거네.” “이제 시작이야. 사실 2학기 때부터 취업반으로 옮겨서 시작했어.” 나는 여기에 온 목적을 재구에서 설명했다. 엄마 얘기를 들은 재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여기서 일해서는 돈을 많이 못 벌어. 야간 상하차 일은 열네 시간 일해서 4만 원도 안 돼.” “그거라도 할 수 있을까?” “힘들 텐데…….” 잠시 생각에 잠긴 재구가 눈을 번뜩였다.
“율무야, 정수기 판매 한번 해 볼래?” “정수기?”
재구는 앞에 있는 정수기를 가리켰다.
“지난달에 정수기를 샀는데 편리하고 좋아. 석 달마다 필터와 부품을 가는데 판매 사원에게 일정 부분 마진이 돌아가나 봐. 영업 사원 얘기 들어 보니까 돈도 제법 벌더라고.” “얼마나 버는데?” 나는 돈이 급했기에 액수가 궁금했다.
“200만 원 넘게 번대.” “한 달에?” “응. 너는 사교성도 있고, 말도 잘하니까 잘 할 것 같아.” 200만 원이면 한 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재구는 내 생각을 확실히 매듭짓는 말을 꽂았다.
“방학 때는 자유롭게 할 수 있잖아. 그리고 평일에도 오후부터 저녁에 시간 내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도 많은데 잘 버는 사람은 150만 원은 우습게 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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